일의 진심으로 기쁨과 더 진심으로 슬픔

올 해는 한 번의 이직을 했다. 새해 첫주에 "3년간 마케터로 스타트업 4개를 다니면서 깨달은 것들"의 타래를 자랑이라고 썼는데 정말정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느슨하게 연대할 수 있는 랜선 스타트업 동료들이 많이많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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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는 '이걸 해서 어따 쓰려고' 라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정말 몇 번이나 잘 참아 넘기고 묵묵히 사내동료평가에 임했고, 평가 결과 1등을 한 사람이 인센티브 100만원을 받는 걸 바라보면서 손바닥이 아프지 않게 소리내며 박수를 치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는 100만원을 받고 싶지 않았고 (정말로 받고 싶지 않았는지 생각해봤는데 정말로 이 과정을 통한 결과물로 그 돈을 받고 싶지 않았어!) 그 사람이 100만원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대신 그 시기의 사내동료평가 및 면담 과정에서 객관식보다 주관식의 영역에 충실하게 본인의 의견을 기술한 거의 유일한 조직원으로서 (놀랍지도 않지만) 대표와 몇 번의 면담을 거듭한 결과 사내에 신규 팀이 신설되었고 나는 그 팀의 팀장이 되었다.

팀장이 된 시점으로부터 나는 한달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으며, 그 사이 회사의 팀장회의에서는 애자일 방법론을 도입하자는 것이 주요안건이었으며, 곧 나의 팀원이었던 분은 퇴사 했으며, 4개월 정도 담당했던 아이템은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다. 내가 퇴사한 이후로 회사는 사업방향을 전환했다. 이 대목을 희화화하거나 유머러스하게 돌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있는 그대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퇴사한 주에는 충청도에 있는 배과수원에 인공수분 알바를 하러 다녀왔다. 여기서 정말 매일 일한만큼만 번다는 감각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이 일을 하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어느덧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데, 어느덧 4월 중순이 되어 있었다. 국내에서 밭일을 하기에 이정도로 날씨가 받쳐주는 때는 아마 없으리라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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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부터는 밭일을 비롯한 알바 조차도 없이 본격적으로 백수였기에 집에 있는 잡동사니를 모조리 팔았다. 정말 근거리에 살고 있지만 100일이 조금 넘은 신생아와 내내 둘이서만 집에 있다는 분께 베드트레이(침대 위에 앉아서 독서를 할 때 쓰기 좋은 숙식을 할 수 있는 책상)을 판매하기도 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 집 1층 로비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도 시간이 많았고. 약 10건에 달하는 당근마켓 거래 중 나에게 가장 큰 감사함을 표현했던 거래자분은 바로 그 분이었다. 곧 그 아이는 자라서 돌이 되겠구나.

가계부를 정리하던 5월의 어느 밤에는, 현대카드 앱에서 버튼 하나를 잘못 오해해서 눌렀다가 그 시점에서 모든 3개월 할부로 걸려있던 금액이 일시 결제 되었다. 현대문명이 이렇게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5월부터 감사하게 소개 받은 프리랜서 업무를 하게 되면서, 그것이 투잡이 되고, 쓰리잡이 되고... 멈추고 싶었지만 하나만 멈출 수가 없어서 그냥 일을 했다. 얼마나 일을 했는지는 곧 다시 이야기하겠다.

7월에는 폭염에... 양파를 조난 볶았다... 캬라멜라이즈 된 양파를 모든 요리에 넣어서 먹었다. 시작은 백종원의 유튜브 덕분이었다. 양파를 썰면서 생각했다. 몇 년 전 이다혜 작가님의 글쓰기 클래스에서 '모든 종류의 감정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미래 세계에서 파와 마늘로 둘러싸인 방에 들어가서 감정을 소모하는 일과를 보내는 사람들'을 소재로 픽션을 쓴 적이 있던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 땐 양파가 사람을 울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은데... 양파를 썰면서 몇날 몇일 우는 건, 그 즈음의 내가 울고 싶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